posted by 연구하는 chul2 2009.05.15 22:21
  개인적으로 금년 최고의 기대작이었던 김씨표류기가 어제 개봉했고, 상황이 허락하여 바로 볼 수가 있었다. "한강 뚝섬에 사람이 혼자 살고 있다면 어떨까?" 라는 엉뚱한 아이디어를 시작으로 정재영, 정려원이라는 매력적인 배우들과 함께 만들어진 이 영화 <김씨표류기>는 기대했던 그대로 정말 좋았다. 그리고 정말 편안한 영화였다. 너무 루즈하다는 평도 꽤 들려왔지만, 나에게는 그 루즈함 또한 이 영화의 매력 중 하나였다. 그리고 느림이라는 것은 이 영화를 특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. 

  나른한 오후 달콤한 낮잠같은 영화 <김씨표류기>이다.
  
A-
  

느림, 느긋함, 늘어짐의 미학
  분명히 이 영화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은 굉장히 루즈하다. 자칫 잘못하면 영화를 보면서 깜빡깜빡 졸 수도 있을 것 같다. 하지만 그 루즈함에 지지않고 거기에 동화되어서 영화를 감상하다보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. 아무 걱정 없이 따스한 햇살을 받으면서 낮잠을 자는 느낌이랄까? 비록 난 심야에 영화를 보았지만 그런 편안함을 느꼈다. 그리고 영화에 간간히 등장하는 그리고 잔잔한 웃음들은 가끔 불어오는 산들바람의 느낌이었다. 듣기만해도 기분이 좋아지지 않는가? 영화를 보면서 이런 재미를 찾을 수 있을 줄은 생각지 못했는데, <김씨표류기>가 보여주는 느림, 느긋함, 늘어짐은 다른 영화에서는 만날 수 없는 요소들이다.

  안그래도 졸린데, <김씨표류기>는 대사도 많지 않다. 그나마 나오는 대사들 마저도 누군가의 독백이 대부분을 차지한다. 그렇다고 불친절한 영화는 아니다. 오히려 더 친절하다. 나에게 좀 공감해달라는 나와 함께 웃어달라는 나와 함께 슬퍼해달라는 영화 속 외침들은 분명히 절실해야하는데 굉장히 느리고 나긋나긋하게 다가온다. 그리고 그 효과는 만점이다. 당신은 짜장면 먹는 장면을 보면서 눈물을 글썽거려본 적이 있는가? 

  난 해봤다.

귀여울 정도로 참신한 김씨표류기
  <김씨표류기>는 편안하지만 그렇다고 익숙한 영화는 아니다. 너무 많아서 어디서부터 소개해야 할 지 모를 정도로 시작부터 끝까지 아기자기하고 참신한 요소들이 가득하다. 아이디어와 소재는 물론이거니와 그 연출방식까지 참 귀엽다. 남자김씨(정재영)의 말투, 대사, 몸짓, 그리고 그가 세상에 대적하는 방법. 여자김씨(정려원)의 맑은 눈망울, 그녀 만의 세상, 그리고 그녀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. 창의력이라고 해야할까? 매 장면이 감독과 작가의 역량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. 영화의 시작부터 엔딩크레딧이 나오는 순간까지 말이다. 세상에 영화를 어떻게 만들면 엔딩크레딧 세 번째에 짜장면 배달부를 등장시킬 수가 있을까?

남자정씨 여자정씨
  정재영이라는 배우는 개인적으로 너무도 좋아하는 배우이다. 그래서 얼마나 믿어줄지는 모르겠지만, 역시 정재영이었다.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부분이 마음에 들었다. 그만큼 <김씨표류기>는 정재영이라는 배우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영화였다. 전체적으로 보면 너무 가볍게 묘사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수도 있지만, 결정적일때 그가 보여주는 눈물 한 방울로 그 모든 의구심을 씻을 수 있을 것이다. 그 끝 모를 능청스러움과 어린아이같이 순수한 눈물을 소화할 수 있는 배우가 어디에 또 있을까? 정재영이기에 가능했다고 밖에 생각할 수 밖에 없다.

  정려원이라는 배우를 접할 기회는 거의 없었는데, 가수출신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주어진 역할들을 잘 소화해나가고 있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었다. 그런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. 영화와 배역 자체가 굉장히 독특하기는 했지만, 그것이 정려원이라는 배우의 역량을 감출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. 그녀이기에 영화도 배역도 빛났다. 그녀를 보면 투명하다는 생각이 든다. 정말 너무도 투명하기에 어떤 장소에서 어떤 배역을 입혀놓아도 그렇게 잘 어울릴 수가 없다. 삐쩍 말라버린 몸과 이마의 상처까지도 아름다웠다.

표류의 시작과 끝
  무능력함과 빚에 떠밀려 자살을 선택한 남자김씨(정재영), 이마의 상처와 마음의 상처를 가지고 방 안에만 살고 있는 여자김씨(정려원), 영화의 주인공인 이 두 남녀의 처지만 보면 그렇게 우울할 수가 없다. 하지만 남녀김씨의 현재 상황은 이 영화의 시작점일 뿐이다. <김씨표류기>는 거기서부터 희망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. 영화 자체도 굉장히 아름답게 그려졌지만 그러한 과정이 있기에 영화가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. 절대로 뻔한 드라마는 아니다. 절대 희망을 잃지 말라는 그 한 마디는 분명하지만, 전혀 색다른 방법으로 전달해준다. <김씨표류기>를 보고 나니 독특함이 단지 일시적인 효과만 주는 것이 아니라,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이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. <김씨표류기>를 보면서 나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어느새 내 가슴 한 구석에 자리잡은 희망을 발견해보자.  

  그저 세상에 치여서 희망이라는 작고 소중한 단어를 잃고 살아가는 당신에게 추천하는 독!특!한! 영화 <김씨표류기>이다.

철이생각: 누구나 상처를 가지고 살아간다. 그리고 자신만의 세계를 가지고 싶어한다. 그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, 결국 세상은 누군과의 관계가 가장 중요하다.  절대 아닐 것 같지만 내가 어떠하다고 하더라도 세상 어디에서는 나를 알아주고 내 상처를 보듬어줄 사람이 존재한다. 그리고 당신도 그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될 수 있다. 절대로 문을 닫지 말자. 자신만의 세상을 빠져나와서 기쁜 마음으로 관계를 형성하자. 누군가에게 강제로 끌려나가지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. 너무 슬퍼하지 말자. 그것이 새로운 희망의 시작이 될 것이다.


신고

티스토리 툴바